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민재(내야수) (문단 편집) === [[롯데 자이언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420161807174G.jpg|width=100%]]}}} ||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공업고등학교]] 출신으로 1991년 [[롯데 자이언츠]](고졸 출신)에 입단하여 1992년에 롯데의 V2를 경험.[* 사실, 이 해에 롯데의 주전 유격수는 [[박계원]]이었다. 김민재는 [[KBO 플레이오프/1992년|플레이오프]] 2경기에만 대수비로 출장한 것이 1992 포스트시즌 출장의 전부이다.] 3년차인 1993년 주전 2루수인 [[박정태]]가 무려 2년을 날려먹은 엄청난 부상[* 이 해 타격 1위를 달리던 5월 23일 사직 태평양전에서 1루에서 2루로 슬라이딩을 하다 [[염경엽]]과 충돌하여 발목이 부러졌다.]을 당하는 바람에 주전 2루수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해 6월 6일 사직 해태전에선 양팀 통틀어 유일한 득점을 홈런으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8회초 수비에서 [[이순철]]의 안타를 지우는 호수비를 선보여 자신의 이름을 야구팬들에게 깊이 아로새겼다. 1994 시즌부턴 주전 유격수 [[박계원]]이 군복무를 하게 되어 신인 [[김종훈(1972)|김종훈]]에게[*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알려진 그 김종훈이 맞다. 대부분 외야수로서 활약한 것만 기억하지만 신인 시절에는 내야수였다.] 2루수를 넘겨주고 주전 유격수로 출장하기 시작하며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90년대 당시 삼성의 키스톤 콤비는 [[강기웅]] - [[류중일]]이 있듯이 롯데엔 김민재 - 박정태가 키스톤 콤비를 이루었었다. 통산 타율이 2할 5푼이 안 되지만 팀 배팅에 능하고, 리그 정상급의 견고한 수비가 장점인 선수로 내야 전 포지션 수비가 가능하다. 그 점을 높이 사 [[강병철의 양아들]]의 소리와 함께 1군 주전으로 뛰게 되었고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등 국가대표팀에도 많이 발탁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김재걸]]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특히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본선 2라운드/1조 5경기|본선 2라운드 한일전]]에서 3루까지 무리해서 진루한 것이 가까스로 세입이 되었는데 이때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는 [[일본]]팀 3루수였던 [[이마에 토시아키]]와 같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148998|그 표정]]이 [[짤방]]급이라 [[최훈]]의 WBC카툰에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23&aid=0000000120|기합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재조명되었다. 출장 경기 수로 치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장한 선수였다.[* 첫 번째는 바로 [[정성훈]].] 고졸 출신의 선수가 뛰어난 자기 관리를 하면 이 정도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수. 롯데 팬들에게는 진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데, [[1995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맹타를 휘두르며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도 했고, 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KBO 플레이오프/1999년/7차전|플레이오프 7차전]] 연장 11회에서 결승 2루타를 쳐냈기 때문이다.[* 실투를 잘 노린 경우가 아니라 뱀직구를 순수하게 기술로 쳐냈다. 이후 SK 시절에도 당시 리그를 삼켜버린 [[조용준]]의 하드 슬라이더를 쳐낸적이 있을 정도. 다른 건 몰라도 슬라이더 하나는 탁월하게 공략했다.] 또한 [[전준호(1969)|전준호]]와 더불어 가장 오래 리그에 남았던 92년 우승의 멤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92년도 포스트시즌때는 2경기 대수비로 나온게 전부지만...[* 2009 시즌이 끝나고 두 명 다 은퇴했다.] 99년도 포스트시즌 때 동영상은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 참고. 그래서 김민재가 롯데를 떠나 다른 팀에 있었을때도 사직구장에 가면 한잔 걸친 아재들이 "김민재는 (언제나)롯데 꺼!"라고 외칠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