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대중(기자) (문단 편집) == 논란 == * [[5.18 민주화운동|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광주광역시|광주시]]를 ''''폭도가 점령한 무정부 도시''''로 보도하며[[http://t1.daumcdn.net/news/201505/31/mediatoday/20150531182017378.jpeg|해당 사진]] 신군부의 편을 드는 기사를 썼다.[* 반면 현재 김대중과 함께 대표적인 극우파 언론인으로 분류되는 [[조갑제]]는 당시 반쯤 목숨 걸고 직접 [[광주광역시|광주]]에 현장취재를 다녀왔고, 제대로 된 르포기사를 썼다. 조갑제는 적어도 1980년대 당시까지는 '''반정부 성향'''의 [[국제신문]] 기자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 참가자들을 '폭도'로 평가한 것이야 자기 개인적 견해라든가 아니면 신군부의 압박에 순응한 결과물이라고 쳐도, 당시 광주의 상황에 대해 '''“생필품의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기사를 쓴 것은 명백한 왜곡 보도였다. 한 마디로 광주를 무법천지로 묘사하며 계엄군의 신속한 진압을 간절히 요청한 것. 당연히 이는 그의 언론인 생활에 치명적인 오점 중 하나로 남았다. 참고로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던 김대중 기자가 군부에 의해 철저히 봉쇄된 광주에 가서 취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두환 신군부가 각 신문사 사회부장들에게 '''100만 원''' 씩 [[촌지]]를 쥐어 주고 5월 24일에 직접 광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신문사 사회부장 월급이 45만 원 정도였던 때다. 물론 신군부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라는 주문이었다.[* 출처 : 윤덕한,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 훗날, 그는 이 일에 대해서 [[1997년]]에 <5.18 특파원 리포트>라는 책을 출간해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였지만, 이런 사실은 대중에게 그닥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그 사과라는 것이 "별것도 아닌 스케치 기사를 놓고 검열 당국은 ‘폭도’라는 단어를 쓸 것을 (기사) 통과의 조건으로 냈다. 승강이 끝에 나는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는 표현으로 고쳐줬다" 정도였지만 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긴 시간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17년이 지나서야 겨우 꺼낸 허술한 변명들이 진짜 진심어린 사과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 평소 안하무인적 성격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내린 적이 많았다. 특히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조선일보의 편파적 보도에 항의하던 [[새정치국민회의]]와 [[국민신당(대한민국)|국민신당]] 선거 운동원들에게 술에 취한 채 손가락질을 하며 '''"너네들 내일 모레면 끝이야. 국민회의, 국민신당 너희는 싹 죽어. 까불지 마. 내일 모레면 없어질 정당이." '''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며 술주정을 부렸던 사건은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5466|#]] *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7년 12월 24일, 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다룬 [[월스트리트 저널]] 영문 기사를 조작하여 번역한 [[가짜 뉴스]]를 써서 조선일보 지면 1면에 발행한 전적도 있다. 이는 당시 한창 물오르던 [[딴지일보]]에 의해 발각되었고, [[http://www.ddanzi.com/ddanziNews/616443|온라인 기사]]로 발행되어 엄청난 히트를 쳤다. 이 딴지일보 기사는 초창기 인터넷 세상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현재까지도 언론 비평 관련 저작물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 출처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3 :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대부분의 고유명사를 비틀었던 초창기 딴지일보답게 이 인물의 이름도 비틀었는데 [[김대중]]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쪽은 김대충으로 비틀어썼다. 조중동의 외신왜곡은 이외에도 여러 매체를 통해 수차례 지적되고 있다. [[https://m.youtube.com/watch?v=2rd7lOr8vkg|사례]] * 그는 조선일보 주필이 되기 전부터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혹은 가장 악명이 높은 언론인이였고, 또한 동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기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권력을 자기가 지목한 타겟의 ''''살인''''에 꺼리낌 없이 사용했다. 그의 레이더망에 걸리는 인물들은 족족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료 [[류근일(기자)|류근일]]은 김대중 주필에 대해 '''"그 놈? 못 됐지. 아주 나쁜 놈이야."'''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문제인 것이 김대중과 류근일 두 원로는 서로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정도의 사이였다. 두 사람의 사이는 [[악우]]로 보는 쪽이 적합하다.] 그가 조선일보 주필 시절 얼마나 편향되게 펜대를 휘둘렀는지는 간단한 통계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00년에 기고한 26건의 ‘김대중 칼럼’ 가운데 15건이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 [[새천년민주당]]을 비난한 것이었는데, 반면에 [[한나라당|야당]] 총재인 [[이회창]]을 비판한 칼럼은 단 1건도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측의 인사들과는 사적으로는 약간의 친분은 있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이던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이후까지, 사실상의 언론 창구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을 자랑하던 김대중 주필을 어떻게든 설득해 내기 위해 박지원 실장이 김대중 주필을 거의 매일 만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김대중 주필 기자 50주년 기념 칼럼에 실리기도 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02/2015060202691.html|#]]] * 2001년에는 조선일보가 차명계좌를 통해 탈세를 했다는 혐의에 연루되어 검찰에 소환되었으나, 여기에 불응하였다. * 2019년 1월 1일, 본인의 조선일보 칼럼에서 '대한민국은 '평화'를 좇다가 '통일연방'(북한 철도상의 발언) 쳐다보는 꼴이 될 것이다.'라고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31/2018123102600.html|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관계 자체에 오류가 있는 칼럼이었다. 칼럼이 게재되기 며칠 전인 2018년 12월 26일, 남북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가한 [[북한]]의 김윤혁 철도상이 기념사에서 "남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려서는 어느 때 가서도 민족의 뜨거운 '''통일열망'''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던 것을 당시 공동 취재단의 담당 기자가 잘못 알아듣고, '''통일연방'''으로 받아쓰기 한 것이 그대로 기사로 나갔다가, 기념사 영상이 공개된 뒤 해당 발언이 확인되면서 잘못 나갔던 기사들이 죄다 정정되었던 헤프닝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그 다음날인 27일까지 여러 언론에서 해당 기사를 정정하는 관련 보도를 냈으며, 또한 JTBC 뉴스룸도 팩트체크 코너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idR9o_viJUQ|해당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 김대중 전 주필은 정정보도가 나간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해당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팩트체크를 하지 않은 채, 사실 관계에 심대한 오류가 있는 글을 그대로 기고했던 것. 이 때문에 김 전 주필의 기자로서의 기초적 취재 능력 자체의 문제가 오랜만에 드러났다거나,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김대중 칼럼'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뽀록났다(...)는 등의 뒷말이 언론계에 돌기도 했다. * [[2020년]] [[5월 26일]]자 칼럼에서는 통계상의 오류와 사전투표지 발견 등의 주장을 인용하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5/2020052503731.html|극우 유튜브와 극우층 일각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에 힘을 싣었다.]] 그러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정선거 음모론/주장과 반박|이 항목]]'''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정선거 음모론/관련 사건/월터 미베인의 주장|이 항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김대중 주필이 칼럼에서 제기한 의혹 중 대다수는 이미 반박된 부분'''이다. 게다가 김 주필은 실질적인 재검표 절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대법원]]'''에 재검표를 요청하면 된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민경욱]] 의원은 대법원이 아닌 '''[[인천지방법원]]'''에 증거보전신청만 했을 뿐,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