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징 (문단 편집) ==== 김경징의 사형은 부당하고 과도한 처벌이었는가? ==== 위에서는 김경징은 강화도 수비의 책임이 없었으며, 단지 왕실 가족들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족을 지키지 못한 벌이 처형이라는 것은 과하다.’는 뜻이거나, 혹은 ‘김경징은 강화도 함락의 책임이 없었다.’는 뜻이거나, 혹은 ‘강화도를 지키지 못한 잘못이 왕족을 지키지 못한 잘못보다 크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어느 쪽이든 잘못되었다. 조선은 왕조국가이고, 사대부는 그 체제 아래 많은 혜택을 누린다. 그 권력은 국가의 체제를 수호하는 의무가 전제된 것이고, 그 중 가장 중대한 것이 바로 왕가를 지키는 것이다. 게다가 김경징이 맡은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왕족 일가의 호위였다. [[월급루팡|그는 사대부의 도의적 책무이자 왕이 직접 내린 임무를 무책임하게 내던진 것이다.]] 게다가 싸우는 역할이 아니었을 뿐, 김경징 또한 강도검찰사로서 강화도의 방어 태세를 철통같이 유지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들과 조익의 병정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 했고, 전투가 벌어져 강화성이 함락됐을 때는 혼자 도망치기까지 했다. 그래서 김경징이 사사된 것이다. 그에게 맞는 형벌은 사형이나 [[연좌제|그 이상의 것]]이었다. 오히려 일가족이 오랑캐에게 포로로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김경징을 두둔하던 인조가 이상할 지경이다.[* 심지어 1637년(인조 15년)에는 "김경징을 예장(禮葬)하라."고까지 했다. 예조에서 "장신을 사형에 처했을 때도 예장을 하지 않았는데, 김경징만 달리 할 수 없다."고 반대해서 없던 일이 되긴 했지만.[[http://sillok.history.go.kr/id/kpa_11509021_003|#]] 이렇듯, 인조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김경징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인조는 다른 목적으로 김경징을 옹호했을지도 모른다. 말인즉슨, 인조 역시 김경징을 죽이고 싶었지만, 반정 때부터 충성을 바쳐온 김류에게 그런 심기를 표출하려니 심정적으로 미안한 감이 있어, 본심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조정의 여론은 김경징 사형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고, 그 주장은 논리로도 명분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인조가 김경징을 옹호하더라도 그러한 판세를 뒤집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인조는 "난 네 아들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워낙 강하게 반대하니 그러지 못하겠다. [[유감|유감이다.]]" 같은 메시지를 김류에게 전달하기 위해, 김경징의 편을 들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김경징을 예장하라.'는 명령 역시 진심이 아니고, 그저 김류를 달랠 목적으로 던진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진실은 저 너머에|물론 인조가 실제로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전부 추측에 불과하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