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사영어학교 (문단 편집) == 폐교 == 1946년 4월 말 폐교한다. 당시 남아있던 학생들은 5월 새로이 개교한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 1기생으로 전입하였다. 1946년 5월 1일 개교한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1946년 6월 15일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칭)는 [[조선국방경비대|경비대]]를 창설하는데 필요한 전문적인 장교 양성을 목적으로 하였고, 초대 교장은 군번 1번 이형근 대위였다. 1기 88명을 시작으로 6기까지 있었다. 1,2기는 군 경력자, 3,4,6기는 조선경비대 하사관중 추천자, 5기는 민간인이었다. 총 1,511명이 입교해 1,255명이 임관하여 366명이 전사하고 257명이 장성을 달았다. 그런데 1,2기의 경우 군사영어학교생과 일본군 군경력은 비슷하지만 임관일의 차이 때문에 승진이 넘사벽이었다. 예를들어 군사영어학교 출신자들이 6.25 때 별을 달고 5.16까지 돌아가며 육군참모총장 해먹을 때 조선경비사관학교 1,2기는 이제 막 장성 달았고, 그 이하 기수는 한국전쟁 당시 대대장~연대장 급이었다. 1948년 8월 9일부터는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되어 7기~11기 까지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시 10기는 2년제 교육, 11기는 4년제 교육생이었는데 10기는 소위로 임관시켜 줬고, 11기 338명은 소총수로 참전했다가 전사자를 제외한 175명은 그해 8월 육군종합학교 제1~2기 속성과정을 거쳐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1951년 10월 경남 진해에 새롭게 4년제가 선발되며 11기로 계산 되었고, 원조 11기는 없는 셈 치게 되었다. 현재까지 살아 있는 원조 11기 생들은 '생도 2기'라고 불러달라거나 육사 10기 후반기로 계산해달라고 하는데 잘 안 되는 듯. 육사 7~10기만 계산하면 4,055명이 입교하여 3,731명이 임관하고 1,095명이 전사했으며 343명이 별을 달았다. 정규기수는 모두 민간인을 시험봐서 선발했으나 7~8기 중 특별전형은 군경력자와 하사관 추천자인데 민간인보다는 적고 교육 기간도 1/3 정도였다. 민간인 선발인 5기와 7~9기 정규 기수는 24주 교육이며 10기는 원래 2년제를 목표 했는데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충 수료한 셈 치고 7월에 소위로 임관 하였다. 교육기간은 당초 목표와 달리 48주였다. 반면 원조 11기생은 6월에 입교하여 25일에 전쟁이 터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