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행정구역)/대한민국 (문단 편집) === 도농분리 시절 === 군 내의 읍 중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곳은 시로 승격되어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되었으며, 이 경우 외곽의 군이 시로 승격한 지역을 둘러싼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제도는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전국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경성, 대구, 평양 등 내륙 대도시 및 [[부산광역시|부산]], [[인천광역시|인천]], [[목포시|목포]], [[군산시|군산]], [[마산시|마산]] 등 개항장 도시들을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시가지 지역과 조선인이 많이 거주하는 농촌 지역으로 분리하여 전자는 부(府), 후자는 군(郡)으로 별개로 편성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경성의 경우 [[경성부]]-고양군으로, 대구의 경우 대구부-달성군으로, 평양의 경우 평양부-대동군으로, 부산의 경우 부산부-[[동래|동래군]]으로, 인천의 경우 인천부-부천군으로, 목포의 경우 목포부-무안군으로, 군산의 경우 군산부-옥구군으로, 마산의 경우 마산부-창원군으로 각각 분리되었다.] 이후 1931년 읍(邑)제도가 도입되면서 인구 5만 이상의 [[읍(행정구역)|읍]] 역시 앞의 부/군 분리 시스템을 똑같이 적용하여 읍을 부로 승격시키게 된 것. 조선인/일본인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분리시켰다는 점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차별적으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일제의 의도가 있었다. 1989년의 행정구역 조정 시 [[시흥군]]을 [[시흥시|시흥]], [[군포시|군포]], [[의왕시|의왕]] 3개 시로 나누어 승격한 것을 마지막으로, 읍 하나만 시로 올리는 일은 없어졌다.[* 도 직할구역이었던 [[계룡시]]는 두마면에서 바로 시로 승격한 경우이므로 예외.] 1992년 시로 승격한 [[경기도]] [[고양시|고양군]]의 경우 [[일산신도시]] 관계로 도시화가 진행된 지역도 있었으나, 아직도 일산신도시와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아직도 농촌비율이 꽤 된다. 당시의 지방자치법에는 시에 읍면을 둘 수 있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전역에 있던 읍, 면을 폐지하고, 군 전체가 시로 승격되었다.[* 시 승격이라는 것이 기존 군에서 읍면단위만 분리하여 작은 (면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던 당시의 시각으로서는 아무래도 어색하였던지 한때 일산, 벽제, 원릉(원당+능곡) 등 3개의 시로 분할 승격하는 방안도 고려하였으나 생활권 분리 등의 문제로 전역을 하나의 고양시로 승격시켰다.] 덧붙여 시흥시 또한 당초 시 승격 대상이던 소래읍에 다른 면까지 합쳐 승격된 것이므로 이 또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나름의 도농 통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