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정보원 (문단 편집) == 역사 == ||<-5> '''{{{+1 대한민국 정보기관 변천사}}}''' || || '''[[중앙정보부|{{{#fff 중정}}}]]''' ||<|5> {{{+1 →}}} || '''[[국가안전기획부|{{{#fff 안기부}}}]]''' ||<|5> {{{+1 →}}} || '''{{{#fff 국정원}}}''' || ||{{{#!wiki style="margin: -6px -10px" [[중앙정보부|[[파일:중앙정보부기.svg|width=100%]]]]}}}|| [[국가안전기획부|[[파일:국가안전기획부 휘장.svg|width=80%]]]] || [[파일:국가정보원 로고.svg|width=70%]] || || '''[[중앙정보부]]''' || '''[[국가안전기획부]]''' || '''{{{#fff 국가정보원}}}''' || || 中央情報部 || 國家安全企劃部 || {{{#fff 國家情報院}}} || || '''Korean Central Intelligence Agency''' || '''National Security Planning Agency''' || '''{{{#fff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 ||<-5> '''원 훈''' || ||<-5> 우리는 陰地에서 일하고 陽地를 指向한다 (1961.9 ~ 1998.12)[*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 ||<-5> 情報는 國力이다 (1999.1 ~ 2008.10)[* 정보는 국력이다] || ||<-5> 自由와 眞理를 향한 無名의 헌신 (2008.10 ~ 2016.6)[*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 ||<-5> 소리 없는 獻身, 오직 대한민국 守護와 榮光을 위하여 (2016.6 ~ 2021.6)[*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 ||<-5>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 (2021.6 ~ 2022.6)[* 역대 원훈석들이 모두 국한문혼용체로 새겨진 것과는 달리, 최초이자 유일하게 한문 없이 한글로만 만들었다.] || ||<-5> 우리는 陰地에서 일하고 陽地를 指向한다 (2022.6 ~ 현재)[*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 국가정보원은 [[5.16 군사정변]] 직후 [[김종필]]에 의해 만들어진 [[중앙정보부]]와 제2공화국 설립 직후 국가중앙정보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창설한 [[장면]] 총리 직할의 [[중앙정보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앙정보위원회는 위원장인 이철희 장군의 군번을 따서 약칭 '79호실'로 불렸다. 이철희 장군은 이후 전두환 시절 해방 이후 최대의 경제사기 사건인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철희·장영자 사건]]을 일으킨다. 이 중앙정보위는 이철희, [[이후락]] 등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었다. 김종필 본인은 부인했지만[* [[https://news.joins.com/article/17504947|자료1]],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Print.aspx?news_id=NB10834327|자료2]]] 중앙정보위원회가 최초의 군사적 정보 외의 포괄적 정보를 수집, 운용하고 관리 감독하던 기관은 중앙정보위였고, 중앙정보부와 국가정보원의 모태가 되었다는 견해는 많다. 예를 들어 정윤재, 《정치 리더십과 한국 민주주의》(나남출판, 2003) 274페이지, "중앙정보위 설치", 동아일보 1960년 11월 12일자 1면, 정치면, "정보연위 신설, 11일각의서 의결", 경향신문 1960년 11월 11일자 1면, 정치면, "중앙정보연위 11일하오 첫회합", 경향신문 1960년 11월 12일자 1면, 정치면 등. 초기 중앙정보부 법령이 발표되었을 때 권한이 너무 막강한 나머지 일각에서는 헌법보다 상위의 법처럼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미국의 [[CIA]]와 [[FBI]]와 동급의 권한을 가진 매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으며 군사정부 시절에 실제로 그렇게 쓰인 내력이 있다. [[1972년]] 7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부장은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10.26 사건]]의 여파로 대대적인 중앙정보부 물갈이 작업이 이루어지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 부장서리를 겸했고 신군부 집권 후 1980년에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하였다. 전두환은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박정희를 부도덕하고 방종한 자로 묘사했으며 이때 이후 1980년대~90년대 내내 박정희는 부패와 타락의 상징처럼 불렸다. 참고로 박정희가 다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정치권에서 시작한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는 큰 틀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 기관이었으나, 국가안전기획부는 형식적이긴 했으나 명칭 그대로 국가의 안전을 기획하는 역할을 특히 강화하였다. [[1995년]]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에 서울 남산 청사가 비좁아지자 남산과 이문동 청사를 모두 통합하여 현재의 내곡동으로 이전하였다. 다른 곳 다 놔두고 서울 내곡동으로 이전한 이유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넓은 부지가 서울 내에서는 이곳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성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내곡동(서울)|내곡동]] 부지의 북서쪽에 [[대모산]]과 [[구룡산]]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 북한의 레이더에 잡히기 상당히 어려운 위치는 맞다. 이곳은 [[https://www.kgnews.co.kr/mobile/article.html?no=113366|단국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이전 예정부지였지만 안기부의 이전으로 인해 단국대는 결국 수지캠퍼스를 만들어 용인시 수지구로 가게 된다.]] 1995년까지는 남산과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청사가 있었다. 남산에는 남파공작원과 좌익사범의 색출을 담당하는 국내 파트가, 이문동에는 대외·대북 정보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는 해외 파트가 소재하고 있었다. 국내 파트가 소재한 남산은 인권 유린과 고문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진 장소여서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남산에서 나왔다는 말로도 벌벌 떨었다. 그곳에 끌려가면 사람이 불구가 되거나 행방불명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실제로 서슬퍼렀던 군사독재 시대에 무수한 고문 피해자들이 그곳에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화 [[남영동1985]]의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모티브]]가 된 [[김근태]] 전 의원과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1948)|김홍일]] 전 의원이다. 김근태 전 의원은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타계했고, 김홍일 전 의원은 당시 정보기관의 고문으로 장애를 갖고 살다가 2019년 타계했다.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5666.html|기사]] 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기간 김홍일 전 의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불편한 몸으로 등장, 비극적인 장면을 보여 뉴스가 된 바 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94865|기사]] [[1998년]] 취임한 [[김대중]]은 군인 출신이자 중앙정보부, [[민주정의당]] 출신의 [[이종찬(1936)|이종찬]][* 중앙정보부 공채 1기 출신으로 전두환이 중정부장 서리를 겸하던 시절에 중앙정보부 총무국장을 역임했다.]을 안기부장으로 발탁하여 국가안전기획부를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고 새출발시켰다. [[김대중]]의 국가정보기관 탄압이 시작되자 이에 반발한 관계자들이 내부저항으로 현상유지를 시도했다. 주요 쟁점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국내정보파트를 축소시키고 해외/대북이나 현장부서 인원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휴민트 사건|대공수사 인력 숙청]]이 있었고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2516281|이종찬 안기부장이 해명]]한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가정보원 업무를 해외정보로 국한하거나 심지어 해체하자는 주장을 했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11415371|#1]][[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52248255&code=910402|#2]][[http://ppss.kr/archives/74439|#3]] 이러한 주장은 이후 누가 야당이 되든 야당 쪽을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이름을 국가정보원으로 바꿨지만 바뀐 후에도 군사정권 하에서 벌어질법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났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2002년 대표적인 [[국정원 불법 도청 사건]]이 일어났다. [[참여정부]] 시절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여 변모하는 모습을 잠깐 보였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현대적인 공안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이때 형성되어 그 당시 몇 년간은 국내 최고의 선망 직장으로 여겨진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 우경화된 댓글 및 인터넷 여론 조작, 각종 정치공작, 사찰활동 등으로 이미지가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취임 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터졌다. 하지만 몇몇 사건은 이명박 정권 당시 벌어졌던 일이 밝혀지거나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NLL 대화록 논란|정상회담록 무단공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카카오톡 사찰 논란]], 전라도 지역과 진보성향 민간인사, 야권 정치인을 비하하는 인터넷 글을 쓰던 [[좌익효수]]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고, 실제로 정보력에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로 국가기록물을 공개해서 나눠주는 정보기관은 적어도 상식적인 민주국가의 정보기관들 중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유일하다. 인터넷상에서 국가정보원을 욕하면 [[코렁탕]] 마신다는 농담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 그러나, 2015년에 국정원 직원이 빨간색 2세대 마티즈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터진 이후 마티즈 드립이 코렁탕을 반쯤 대체했다. 대통령도 온갖 비판을 다 당하지만 국가정보원만큼은 무서워서 까지 못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을 지경이다. 국회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면 국가정보원이 국회의원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등의 낭설이 돌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국가정보원을 '악(惡)' 같은 것으로 보는 극단적인 경우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영화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어디서는 전투기 사업에 관여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거나 어디서는 정보팀장의 비리를 덮으려고 사람들을 죽이는 경우가 더러 나왔다. 정보단말 로봇을 주운 사람을 쫓는 과정에서 과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장면까지 연출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2016년 3월 테러방지법 통과로 관련 규제가 약해지고 국가정보원 도감청이 합법화되어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했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32&aid=0002824886|국정원장이 나서서 이명박, 박근혜정권 때 있었던 정치 개입과 사찰 등 정권 비호를 위한 불법행위를 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공업무에 있어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은 계속 여전히 진행중으로 보인다. 다만 정보기관으로서 민간인 사찰을 그만 둘수는 없다. 정보기관의 휴민트들은 전부 현지에서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현지 주민들과 관계를 만드는 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국가정보기관 입장에서는 적국의 정보기관과 컨택이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감시를 해야하는게 맞다. 다만 위에 언급된 문제들은 적국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그냥 정적이라는 이유로 감시해서 문제인것이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9082610340596264&outlink=1&ref=https%3A%2F%2Fsearch.daum.net|머니투데이 기사]][[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7399.html|한겨레신문 기사]] 2017년에는 처음으로 여성 부서장이 나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9498870&isYeonhapFlash=Y&rc=N|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