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련 (문단 편집) === 교련복 및 장구 === 야외 실습 시간에는 반드시 준 [[군복]]인 '''교련복'''이 필수였다. 가끔 1960~80년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보면 남자 배우들이 흰 바탕에 검은 얼룩무늬가 있는 상하의를 입은 게 보일 것이다. 또한, [[개그 콘서트]]의 옛 코너 [[청년백서]]에서도 출연자들이 흑백 얼룩무늬 제복 같은 것을 입기도 했는데, 이게 교련복이다. 또한 교내에 있을 때도 교복 대신 교련복을 입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선생들이 교내에서 체육시간 외에 체육복 입는 건 아니꼽게 보면서도 교련복은 그냥 교복처럼 입어도 뭐라하지 않았다. --모르고 보면 교복 같다-- 교복이 불편하다고 아예 거의 교련복만 입고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당시 교복은 대부분 차이나 칼라에 훅을 걸어 목을 조이는, 구 [[일본 해군]] [[하사관]] 동[[근무복]]을 닮은 [[가쿠란]]이었으니, 현대식 [[전투복]]을 본뜬 모양새에 구김도 적고 품도 넉넉한 교련복이 월등 편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조회, [[졸업식]], [[입학식]], 소풍 같은 때에는 당연히 무조건 교복이 필수였지만. 1983년부터 198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복이 잠깐 폐지되어서 다들 알아서 사복을 입고 다니라고 했을 때에도 교련수업은 여전히 현역이라서 이때에도 교련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은 종종 볼수있었다. * 대중적으로 흔히들 알려 진 무늬는 이러한 소위 [[얼룩말]] 무늬지만, 위의 여학생 실습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멀쩡하게 생긴, 패턴에 색상이 들어가서 현용 군복으로 써도 될 만한 위장 무늬를 가진 교련복도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은 각개 전투 등 구르는 과목은 없어서 교련복을 잘 입지 않았다. 아예 없는 학교도 많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교련복을 입는 여학교는 없었다. 대신 삼각건 등이 든 구급낭은 다 사야 했다. 눈으로 보기엔 같은 얼룩말 무늬라고 해도 학교나 [[교복]] 메이커에 따라서 패턴이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다. [[새마을운동]] 표식이나, 책 혹은 [[낙하산]]이 그려진 검은 점 무늬와 "선진조국창조"[*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당시 표어.]라는 한글 등등. 이상하게 이웃한 학교끼리는 패턴이 같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구분하기 위해서인 듯. 바탕색은 완전 백색, 탁한 백색, 연한 회색 등 여러 가지였고, 패턴은 물론 옷감 소재나 질감도 학교마다 조금씩 달랐다. 학교마다 다른 무늬 때문에, 타 학교 전학생들은 교련복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학]]이나 물려 받은 옷이라 패턴이 다른 경우, 각종 패치와 배지만 바꾸면 봐 주는 학교도 꽤 있었다. * 학년별로 옷깃 부분에 길쭉한 백색 네모 모양의 [[계급장]] 표지(2차대전-한국전쟁시의 미군 및/한국 육군 위관급 계급장과 비슷했다)을 달며, 총학생회장, 및 각 학급 반장, 부반장 등은 편제[*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하는 군 편제를 그대로 따랐다. 반장은 소대장. 다만 분대장 보직은 없다.]에 따라 보직이 있었으며, 이를 명찰 부분에 오바로크로 박는 경우도 있었다. 부대마크처럼 학교 교표를 어깨 또는 왼편 가슴 주머니 위에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오른편 가슴에는 보통 백색 바탕에 검정색으로 이름을 쓴 이름표를 오바로크 쳐서 박았는데, 아크릴 명찰로 달거나 아예 안 다는 학교도 있었다. * 부속 장구로 요대(벨트), [[각반]], 교련모, 앞 가리개 등이 있었다. 각반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처럼 붕대 각반을 쓴 것이 아니라, 학교 앞 [[문구점]]이나 동네 가게에서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착용했던 것과 비슷한, 군화끈으로 묶어주거나 쇠 클립으로 고정하고 끈 매는 천으로 된 각반을 팔았는데, 전투화 맨 위 부분에 붙이는 것과 같은 쇠 클립에 끈을 걸어 조이는 방식일 경우, 각반 끈을 검정색 고무줄로 바꾸면 몇 초만에 각반을 찰 수 있었다. 각반 모자 벨트 앞가리개 세트 중 하나라도 빠지면 엉덩이에서 불이 났기에, 교련 수업 시간이 다른 반끼리 서로 자주 빌려주곤 했다. 앞가리개는 전투복에 달려있는 군대 전투복과 달리 별도의 부품으로 스카프 매듯 따로 차야 했다. 하절기에는 교련 검열 등 행사 때 아니면 잘 쓰지 않았으며, 보기보다 불편하여 교련 수업 때만 차고 평소에는 안 매고 다녔다. 그리고 간혹가다 각반 대신에 [[전투화]]를 신고 오면 봐주는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형이나 삼촌의 예비군 워커를 빌려 신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도호국단 학생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은 거의 예외 없이 군악대에서 따온 흰 끈을 끼운 군용 전투화를 신었다. 그게 더 키 커 보이고 멋이 있었으니까. 일반 학생은 각반을 찼지만 군화를 신는 간부 학생 경우에는 [[고무링]]을 썼고, 대대장 이상쯤 되면 심지어 헌병/군악/의장대가 쓰는 금속 링을 차는 경우까지 있었다. 교련모의 경우에는 학교에 따라 달랐던 모양인데, 따로 별도의 교련 전용 모자를 착용하지 않고 그냥 검은 교모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었고, 혹은 더 진지하게(?) '''학교 상징이 새겨진 교련용 [[베레모]]''' 혹은 '''교련복 위장무늬 [[전투모]](...)'''[* 패트롤 캡, 리지웨이 캡형태 혹은 팔각모 형태]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파일:KyoryeonFieldcap1.jpg|교련 위장무늬 전투모 타입의 교련모]], [[:파일:KyoryeonFieldcap2.jpg|#2]], [[:파일:KyoryeonFieldcap3.jpg|교련 위장무늬 전투모 타입의 교련모를 쓰고 교련 수업을 받는 고등학생들]]) * 교련 수업 당시 깨어 있는 일부 교련교사들로부터 학생들에게 대학 들어가서 데모하러 다니는 것을 굳이 막지는 않겠다고 하면서도 제발 교련복은 입고 나가지 말라는 훈시를 들었다는 회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유인즉, 시위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전투경찰순경|전투경찰]]에게 교련복 착용자는 '''극렬분자(?)'''라는 선입견이 있어 체포대상 1순위라는 것이다. 거기에 '''화염병'''까지 소지하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화염병 잘 던질 것 같은 포스...-- * 1994년도에 교련복은 폐지되었지만 기존에 입던 학생들은 그냥 입게 하는 바람에 정확히는 1993년 입학생까지 교련복을 입었고, 1994년 입학생부터는 베레모만 착용하고 복장은 체육복으로 대체하는 식으로 간소화되었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어 교련 교과서가 완전히 개정되기 전 [[5차 교육과정]] 마지막 세대인 1995년 입학생([[1979년]]생)까지 교련복을 착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세월이 많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추측할 때, '''[[악성 재고|교복판매점이 비축한 교련복]]의 [[로비|재고 소진]]'''을 목적으로 교련복 착용 수업을 강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2042년경 교련복 착용 세대가 모두 노인으로 편입된다. * 군사훈련식 교련이 폐지된 시기가 1990년대였던 만큼 당시 학교들 중에서 상당수가 [[갈탄|조개탄]], 왕겨탄 따위를 땔감으로 난로를 사용하던 시기였는데 마지막 교련수업[* 1993~1995년 입학생.(1977~1979년생)]이 끝난 후 쓸모가 없어진 나무를 소재로 만든 교구들을 땔감삼아 난로에 넣어 소각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유인 즉 교련창고를 비우--고 왕겨탄 등도 절약하--기 위해서였는데 아래에 소개될 부러진 목총[* 목총의 소각은 사실 쉽지 않다. 어렵사리 원형을 유지한 경우 크기가 난로에 한번에 들어가지 않아 별도의 절단작업이 필요하기도 했고 100%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무게를 늘리기 위한 금속이 박혀있기도 했다.]과 총검술 과녁으로 쓰던 '''북한군 목형'''으로 화형식을 치르기도... --북한의 도발로 수틀리는 시기마다 김일성, 김정일 사진으로 화형식 하는 걸 보고 자란 세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