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련 (문단 편집) === 문무대 훈련 === [youtube(xI8a2EPjsyE)] 대학에 입학하는 1학년 남학생들은, 성남에 있는 육군학생중앙군사학교에 70년대에는 9박 10일, 80년대에는 5박 6일 동안 소집되어 군사 훈련을 받았다. 입소하는 남학생들을 위해서 여학생들이 [[초콜릿]], [[사탕]], [[담배]] 등을 선물로 주곤 했다. 교련복을 입고 입소하여, B급 군복으로 갈아 입고 [[얼차려]]부터 시작해 짧은 기간 내에 [[유격]], [[총검술]], [[화생방]] [[각개전투]] [[사격술]]등, 육군 훈련소에서 하는 것을 단축한 듯한 군사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일과시간이 무척 빡빡했다. 힘든 주간 교육이 끝나면 밥 먹이고 그냥 재웠냐 하면 그렇지 않고 식후에 따로 모여 정신교육과 이론 교육을 또 받았다. 정신교육이 없는 날은 퇴소 전날 뿐. 주로 이 마지막 날 밤에 학교에서 보내 온 여학우들의 편지와 위문품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실은 입소할 때 같이 가져왔다가 이 날 나눠 주는 것. 가끔 진짜로 수신처를 문무대 앞으로 해서 교내 우체국에서 우편으로 보내는 학교도 있긴 했다. 이 때 특정 상대에게 연심을 품은 편지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여학우가 적은 공대 같은 데서는 여학생들이 나누어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였다. 타 과 여학생이 해당 학과 여학생을 통해 맘애 들었던 남학생에게 자기 편지를 전해 주는 일도 있었고. 어쨌든 학과에 여학생이 만든 적든간에 할당해 형식적인 내용이라도 편지를 써 주어 위문 편지 못 받는 남학생은 없도록 하는 습속이 당시에 있었다. 사격술 과목이 있기에 대부분 여기서 처음 실총 사격을 경험하게 된다. K-1, K-2 소총 보급과 일부 기간이 겹치지만 사용 총기는 M16이었는데, 월남전 때 쓰던 초기형이 다소 섞여 있었다. 군대에서 하는 먼 거리는 아니고, 30미터 이내에 종이 표적 놓고 보통탄 3-5발을 사격했다. 사격 성적이 좋은 학생은 군 훈련에서 그렇듯 한동안 열외해 쉬게 해 주기도. 당연히 못 쏘면 굴렀다. 사고가 난 이후에는 군대에서까지 사라진 훈련이지만, 대학생 입소 훈련이 있을 당시는 사고가 나기 전이라 공수 막타워 모의 강하 훈련도 했다. 층마다 PT체조를 하고, 꼭대기에서는 "이 10m 높이가 인간이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는 높이 어쩌구.." 하는 교관의 개드립을 듣고, "애인 있냐? 애인 이름 불러라, 애인 없으면 엄마라도 소리쳐라." 말을 들으며 조교에게 엉덩이를 차이며 악을 쓰고 뛰어내려야 했다. 대부분 학생들은 그나마 훈련 강도가 약하고 대기 시간이 긴 막타워 훈련을 재미있어 했지만, 고소 공포증이 있더라도 얄짤없이 뛰어내려야 했으니 해당 학생은 고역이었다. 각개 전투 훈련은 경사가 심한 훈련소 뒷산에서 했는데, 참호에 들어갔다 나오고 비탈길 뛰어오르고 총 들고 낮은 포복으로 엎어져서 기고 누워서 철조망 통과, 돌격해서 찌르기까지 다 했다. 즉 군대에서 하는 것과 강도가 다르지 않았다. 학교 분위기에 따라 또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그 훈련의 강도는 점점 약해졌다. 문무대 내에서도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