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련 (문단 편집) === 교과 내용과 수업의 부적절성 === [[고등학생]]들에게 [[총검술]]을 가르치고, 대공사격 요령, [[총알|소총탄]]의 종류 등을 외우게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정말로 잘 생각해 보자. 물론 교과서에 '''적의 목을 벤다''' 라는 문장이 있을 정도였으니... 애당초 해당과목의 설립동기가 독재자의 신변위협에 따른 정권유지용 예비전력 양성이다. 한편, 당시 고등학생들은 [[내신]] 한 등급과 [[학력고사]] 1~2점에 [[대학]]이 갈리는데, 다른 과목은 잘 하는데 교련수업을 못 따라가 내신등급이 깎여 개피를 본 상위권 학생들도 있었다. 바꿔 말하자면, 명문대를 가고 싶어서 내신을 완벽하게 하려면, 교사의 폭력을 감수하며 구령에 따라 동작 맞추는 [[제식훈련]] 잘 하고, 사람 죽이는 총검을 잘 휘두르며, 땅개처럼 구르는 포복과 [[각개전투]]를 잘 해서 점수를 따는 것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시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모든 남학생이 [[군인]]이 될 것도 아닌데[* 징병제긴 해도 몸에 하자가 있어 방위병으로 빠지거나 아예 면제받을 학생도 반드시 존재한다.] 저런 걸 잘 하는게 명문대생, 나아가 대학생의 자질과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거나 몸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모든 학생이 현역병으로 입영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전후 베이비붐, 60년 이후 인구 급증으로 63~77년생은 인구가 너무 많아 현역 판정률이 상당히 낮았다. 80년대 초반부터 교련 폐지 시기까지는 고교중퇴 이하는 체력 무관하게 거의 보충역으로 판정되던 때다. 2대독자 보충역, 3대독자 면제이던 시절. 실제로 [[정준하]]가 4대 독자라는 이유로 면제를 받았다.]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학생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문제가 더 심각해서]], 모의 총기건 뭐건 간에 어쨌든 집총을 하는 교련수업을 거부해 마찰이 많았으며, 보통 이 경우 실기 점수를 0점 처리하거나, 심한 경우는 [[자퇴]]를, 더 나아가 아예 [[퇴학]]마저 당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거기에, 실습에 앞서 충실해야 할 이론 수업도 매우 부실했다. 교실 수업은 야외 수업 못 하는 비오는 날을 골라 한두번으로 끝낸다. 그것도 비오는 날이 없으면 아예 안 보기도 한다. 의외로, 교련 교과서 내용을 가만히 뜯어보면 화생방, 생존술에 관한 부분 자체는 알아두면 상당히 괜찮고 [[군대]]에서 보조교재로 사용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야전교범에서 필요 부분만 모아 편집한 수준이었으니 당연하다) 전시나 재난시 민간인들도 익혀두면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정작 이런 유용한 부분들이 전부 혹은 일부 생략됐다. 이스라엘에 무척 우호적이었던 [[아랍인]]들은 [[중동전쟁]] 당시 해외 유학생들은 달아났고, 이스라엘 유태인 유학생은 무조건 조국을 위하여 싸우고자 귀국했다는 것만 썼다. 이 내용은 [[이스라엘]] 항목에서도 나오는데, [[유태인]]들이 전부 그런 게 아니였으며, 아랍인들도 조국을 위하여 싸우고자 귀국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장 이스라엘의 영화배우인 [[바 라파엘리]]는 병역기피성 결혼 후 면제 판정을 받자마자 이혼한 이스라엘 여자다. 이스라엘은 여자도 징집 대상이지만 '''결혼을 일찍하면 병역이 면제'''된다. [[하레디]]들 역시 병역을 면제받는다고.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비록 우리의 동맹 [[미국]]도 여차하면 언제라도 [[뒤통수]]를 친다고 교과서에 나오기도 했다. 해당 과목이 신설된 박정희 정권 시대 후반기인 리처드 닉슨 때와 지미 카터 때에는 미국에서 미군 철수를 검토했을 정도로 한미관계가 썩 안 좋았던 영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도 통일에 대하여 미국이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지만 영원한 우방이 아니라고 나온 것. 더불어 일본이 가장 통일을 반대한다고 서술되었는데 90년 초반에 [[구로다 가쓰히로]]는 이 점을 거론하며 교련이 [[반일]]이라고 발악하며 비난한 글을 쓰기도 했다. [[캄보디아]] 수상이던 마타크[* 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으나 거부하고 남아 [[크메르 루주]]에게 끔살당했다. 이 편지 내용은 죽어도 내 사랑하는 조국에서 죽겠다면서 당신 미국만 믿던 멍청한 나를 영원히 혐오하면서 죽는다는 후회가 잘 나와있었다.]의 편지를 일부 싣으면서,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만 믿다가, [[망했어요|이 꼴 난다]]고 강조하던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교육들이 줄어들면서 교련이 폐지되기 직전에는, 군부 독재 하의 [[정훈교육]]은 훨씬 건전한 통일 안보 교육으로 순화되었고, 교련교사들은 [[베어 그릴스]]로 변모하여 등산 계획, 조난 시 생존 방법, 화생방 대비, 구급법, [[캠핑]] 같은 훨씬 현실적이고 유용한 정보들을 가르쳤다. 심지어 학기 내내(혹은 [[수능 끝난 고3]]들 대상으로)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내용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다. 필기시험이 많이 쉬워진 지금은 "한 일주일 훑어보는 걸로 충분할 텐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2000년대 이전의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교통 법령 및 자동차 공학에 관한 지식을 묻는 문제가 대다수라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항목을 참조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을 붙일 필요가 있어 덧붙인다. 1. 친이스라엘적인 논조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개신교]]계에 이스라엘 민족과 한민족을 "고난"과 "구원" 관점에서 오버랩해 보는 목사가 많았던 점도 있다. 그리고 소수가 다수를 당해 내야 하는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고, 그래서 이긴 좋은 사례가 [[이스라엘]]이므로. "다윗과 골리앗"이란 비유가 뜻하는 것은 1980년대까지는 교련교과서만이 아니라 사회 일반에서도 통해서, 교련 교과서가 아니라도 출처는 많았다. 물론 2000년대 군사 [[정훈교육]]에서도 쓰이면서 비난받지만. 1. 미국에만 기대지 말자는 논조는 이 당시에는 운동권 주류가 오히려 친미성향에 가까웠고,[* 운동권 주류가 반미로 이동하게 된것은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승인한 이후의 일이었다.] 오히려 시민사회가 미국이 어떻게 해주길 바랐고 당시 정부가 [[10월 유신]], [[주한미군]] 철수 반대, 한국군 전력 강화를 두고, 당시 월남 상실 이후에 중국과 화해 외교를 하던 미국 정부와 갈등이 있었다는 점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