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역(평라선) (문단 편집) == 상세 == 경성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1398년에 이 일대에 [[태조(조선)|태조 이성계]]가 이름을 붙이기를 이 지역에 거울같이 맑은 감호와 읍성이 있다고 해서였다. 다만 점령은 1368년부터 시작된 [[고려]] 시대의 쌍성총관부 수복과 함께였다. 경성군은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3,060㎢로 [[무산군]]에 이어서 [[함경북도]] 전체에서 면적 2위. 무산군이 워낙 무식하게 커서 그렇지 경성군도 면적으로 내놓으면 쉽사리 꿀리지 않는 무식하게 큰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도청 소재지였던 경성군 나남읍이 1940년에 [[청진시]]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이 경성군이 도청 소재지였다. 애초에 [[함경도]]라는 말 자체가 함흥과 경성에서 따 온 것이니... 재미있는 것은 군청의 위치인데, 경성면이었다. 경성군 소속의 읍이 주을읍과 어대진읍으로 두 개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남한에서 1979년까지는 군청 소재지라 할지라도 인구가 2만 이하인 곳은 읍으로 승격시키지 않았다. 그러다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을 거치면서 남부의 40%가 [[어랑군]]으로 잘려나가고 동북부의 1/4 정도가 [[청진시]]에 편입되면서 가운데 1/3 정도만 남게 되었다. 이 때 군청도 경성면 승암리에서 주을읍 온천리로 옮기면서 경성읍이 이 역 근처로 이전했고, 이러면서 역 이름도 자연스럽게 주을역에서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 것. 1941년판 조선철도시각표를 보면 경성역과 주을역이 같이 있는데, 경성역이라고 표기된 곳이 바로 현재의 [[승암역]]이다. [[명천역]]과 비슷한 과정으로 역명 바꾸기를 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