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겨울여자 (문단 편집) == 기타 == 당시 유신정권 하에서 침체기를 걷던 한국 영화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58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이전의 국산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이었던 1974년에 상영한 관람인원 46만 명의 [[별들의 고향]]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단성사(5,590석)에서 34일간 하루 5회 상영했는데 전 회 매진이었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동명극장에서 상영하였는데, 여기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러한 겨울여자의 성공은 일시적으로 한국 영화에 부흥을 일으켰지만, 이후에 나온 영화는 모조리 유명한 여배우 벗기기를 주 내용으로 하는 호스티스물[* 이러한 호스티스물에서 가장 관심을 받았던 여배우가 당대 최고 미녀였던 [[정윤희]]였다. 이외에도 [[유지인]], [[김자옥]] 등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여 흥행에 상당히 성공을 했다.]의 범람으로 인해 이러한 부흥도 일시적으로 끝나게 되었고, [[5공화국|전두환 정권]]의 집권과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으로 한국 영화계는 암울한 8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원래 장미희는 당시 [[속 별들의 고향|별들의 고향 2]]와 [[겨울여자 2]]에도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영화배우가 아니라 공채 탤런트 출신이었던지라 이에 반감을 가진 영화계에서 장미희의 [[겨울여자 2]] 출연을 거부하여 [[속 별들의 고향|별들의 고향 2]]에만 출연하게 되었다. 1983년에 개봉된 [[겨울여자 2]]는 김지영이 대신 여주인공을 맡았는데 서울관객 4만 7천명이란 처참한 흥행을 거두며 망했다. 영화계의 자업자득인 셈. 김추련(1946~2011)은 80년대에는 제법 흥행배우였으나 잊혀졌고 2011년 스스로 목을 메어 자살했다. 우울증 및 사업실패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울러 김추련의 목소리 성우는 [[유강진]], 신성일의 목소리 성우는 [[이강식]][[https://shindonga.donga.com/Series/3/990611/13/103742/5|#]][* 이 기사에서는 해당 배역 성우가 유광진, 이광식으로 나오지만 유강진, 이강식이다.], 장미희의 성우는 [[장유진]]이 맡았는데, 장유진의 데뷔작이었다고 한다. [[분류:1977년 영화]][[분류:한국의 드라마 영화]][[분류: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분류:12세이상관람가 영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