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성시 (문단 편집) == 만약 개성시가 남한령이었다면? == 일단 '''개성시 주변과 38선 부근에서만 휴전이 이루어졌을 경우와, 예성강이나 멸악산맥 이북에 휴전선이 그어진 경우가 명백하게 나누어 질 것이다.''' 개성은 38선 이남의 도시로서 6.25전쟁 이전에는 남한 소속이었으며 거리상으로도 서울에서 철도로 78km로 [[평택역]]([[서울역]] 기준 75km), [[여주역]]([[강남역]] 기준 71km)과 비슷한 거리에 있다. 직선거리로는 58km로서 [[평택시]] 송탄, [[이천시]] [[부발읍]]과 비슷한 거리에 있다. 또 개성과 [[군사분계선|휴전선]]간의 거리는 판문점에서 겨우 12km밖에 안 된다. 그래서 1951년 이후 조금만 더 북진을 했으면 개성을 탈환할 수도 있었다는 전망도 있다. 개성 지역은 모두 [[미수복 경기도]] 권역이라 할 수 있는데, 전 경기도 지역을 다 수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므로 안타까운 이야기일 수 있다. 다만 개성의 서부전선 방면 휴전선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개성의 감제고지인 [[송악산]]과 [[예성강]]까지 획득하여야 할 것이었으므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송악산 일대까지 해서 개성시 전역을 완전히 회복하였다면 군사적으로 [[해주시]]와 [[황해도]]까지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실제로 1.4 후퇴 이후에도 국군 대대가 다시 개성까지 진출은 했다. 그러나 북측의 고지대에 위치하는 송악산을 장악하지 못했고, 관측과 방어에 불리한 분지 지형에서 아슬아슬하게 시내에 진입한 상태에서 곧 중공군의 춘계공세가 닥치자 국군은 개성 시가지에서 철수하게 되었고 이후 이 일대가 휴전회담장이 되면서 다시는 수복하지 못하게 되었다. 송악산 봉우리까지는 어떻게 해본다 쳐도, 문제는 그 바로 북쪽에 버티고 서있는 천마산과 '''임진북예성남정맥'''이 다시 송악산을 감제하기때문에 현 휴전선을 기준으로 30km 이상을 전진해야 간신히 개성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지라 여러모로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즉, 개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적어도 경기도/황해도의 도계선까지 진출하였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개성을 뺏기면 한미연합군은 서부전선에 예성강 너머 탁트인 연백평야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돌출부가 생기는데다 고도가 평양 하나만 딸랑 남게 되는지라 북한으로서도 개성은 사수해야 하는 도시였다. 또한 빠른 휴전을 원했던 미국을[* 당연히 미국내에서도 전쟁 때문에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났었다.] 비롯한 UN 참전국들로서는 개성 수복을 위해 회담을 파토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였다. 특히 연백평야는 재령평야, 평양평야와 더불어 북한의 농경을 지탱하는 3대 평야이기에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연백의 안정적 영유는 필수적이였다. 참고로 예성강을 기준으로 동서 지형이 크게 차이가 나는데 예성강 이서의 연백군 일대는 한반도에서도 손꼽히는 넓은 평야인 반면 이동의 개풍, 개성 일대는 산악 분지 지형이다. 만약 대한민국령으로 남았다면 개성은 대한민국에서 역사적으로 이름난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역사적인 기념물이 많기 때문에 관광지가 될 수 있는데다가, 딱 개성까지만 확보했을 경우 북한과 가까운 장소다보니 북한 관련 관광도 가능할 것이며, 군사적으로도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점에서 주요 군사 요충지로도 가능하기 때문. 따라서 일본의 [[교토시]], [[나라시]]처럼 한국에서는 서울, 경주, 전주, 공주, 부여와 더불어 대표적인 관광도시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개성은 전방과 가까운데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인구가 20위권으로 밀려난 상태였고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신의주, 청진, 흥남, 원산, 광주, 대전, 부산 등 신흥 대도시들이 급부상하면서 대도시로서의 입지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 따라서 휴전선이 예성강이라던가 개성까지만 수복한 상태로 그였다는 가정에서는 개성이 규모나 경제 면에서 남한의 주요 대도시로 발전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강 하구 연안의 개풍군(구 풍덕군) 정도면 몰라도 개성은 서울에서 60km 가까이 떨어져 있기에 간접 영향권이면 몰라도 베드타운과 같은 위성도시로 발전하기에도 어려웠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딱 경기도의 경주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상징성과 역사성이 강하다 하여도 현재 전방도시인 철원과 십수년전 파주의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그렇게 광역시급으로 크게 성장하기는 힘들고 의정부와 비슷한 중소+군사도시와 같은 포지션이었을 것이다. 다만 대동강이나 청천강 또는 멸악산맥 이북에 휴전선이 그어져서 개성 또한 전방에서 벗어났다는 가정에서는 충분히 남한의 대도시로 발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개성 자체가 구릉지대이니 만큼 대규모의 개발을 하기엔 부적절한 면도 있다. 그 외에 [[대한민국]]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성이 만약 남한땅이었다면 '''[[서울특별시|서울]]이 여전히 군사적 전방이긴 해도 지금보다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한발 더 멀어졌을 것'''이다. 딱 개성과 개풍 등 미수복 경기도까지만 수복하고 예성강을 경계로 휴전선이 그어졌다는 가정 하에 군사분계선에서 서울 시내까지는 62km, 서울 시계까지는 48km 정도 떨어지게 되어 현재(서울 시내 기준 38km, 서울 시계 기준 24km)보다는 종심을 많이 확보하게 되지만 여전히 전방이라는 인식을 떼기에는 부족하다. 서울이 전방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서는 개성 정도가 아니라 서쪽으로는 최소 황해도 해주 근방, 북쪽으로는 황해도 평산 근처까지는 올라갔어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부전선의 경우 멸악산맥 넘어서 휴전선이 형성되어야 서울이 전방의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동부전선도 지금보다 북상하게 되어 강원도의 경우 이천군-평강군-안변군 혹은 통천군이 휴전선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수도 방어의 중요 거점이 되어 개성에도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가 위치했을지도 모른다. [[김경진(소설가)|김경진]]의 전쟁소설 [[데프콘(소설)|데프콘]]에서는 통일한국이 수원과 개성에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를 놓고 각각 경기 남북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언급이 있긴 하다. 이 경우 송악산 일대를 1차 저지선으로 삼아 북한의 공격을 훨씬 더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어서 서울에 대한 보위력이 배로 증가한다. 서울-고양-파주-개성 방향의 경의선 축선 및 서울-김포-개풍-개성 방향으로의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개발 또한 보다 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파주는 80~90년대부터 무섭게 성장해서 지금의 고양시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고양시나 서울 서북권은 말 할 것도 없다. 한편 지금의 [[고양시]], [[파주시]]의 군사적 전방으로서의 포지션을 개성이 차지하여 군생활을 하러 개성까지 가야 됐을 것이다. 또한 개성의 한국 영유로 인하여 수도권 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어 [[경기북도]]가 설치됐을 가능성도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북한 치하에서 직할시나 특급시, 개성시라는 이름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한국 영토로 남았다면 [[경기도]] 개성시 행정구역으로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 치하이든 남한 치하이든 최전방인 건 마찬가지이지만 남한 영토라면 수도 서울이 더 가깝기 때문에 군사적 리스크가 커 직할시 같은 특별 행정구역으로 성장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남한에서는 1991년부터 [[지방자치]]가 시작됨에 따라 도의 인구 축소 문제로 직할시 승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일례로 경기도 [[수원시]] 같은 경우는 울산보다 인구가 많은데도 수도권이라서 광역시 승격을 못 하고 있다. 인천 상륙작전 수복 -> 1.4 후퇴로 북한이 점령 -> UN군 수복 -> 중공군이 점령할 정도로 북한이 개성을 점령하기 위해 목숨건 전투로 매우 치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였던 만큼 관광이나 경제적 가치가 큰 도시이기에 휴전선[* 연천, 철원, 김화, 화천, 인제, 고성, 양구, 양양]보다 38선[* 옹진, 연백, 개성]이 낫다는 의견들이 많다. 물론 영토는 38선이 더 넓으나 아무래도 경제적인 가치는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쪽이 높다. 고지대인 [[송악산]]을 북한이 점령하고 있기에 대한민국이 개성을 차지했어도 어차피 뺏긴다는 의견도 존재하는데, 대한민국 영토에서 멀리 떨어져 북한 영토에 가깝게 위치하는 [[서해 5도]]만 봐도 북한이 어떻게 못하는 걸 보면 전혀 상관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도 미군이 주둔하는 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순간 경제 제재는 기본이고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면 핵전쟁으로 다 같이 죽는 것이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송악산에서 잘보이도록 개성 남부에 혁신도시를 개발하여 선전용으로 써먹을 수 있다. 당장 북한입장에서 [[임진강]] 너머로 바로 보이는 [[자유로]]만 해도 자기네들과는 달리 밤중에 가로등이 계속 켜져있는데다가 밤낮을 안가리고 자동차가 매우 많이 다니니 상당히 거슬려했었다. 교통 인프라 측면에서는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개성역]] 연장 등이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을 것이다. 교육 인프라 측면에서는 현재 서울 동대문구의 정화여중·정화여상과 인천의 [[송도중학교(인천)]]·[[송도고등학교]], 그리고 대전의 [[호수돈여자중학교]]·[[호수돈여자고등학교]]가 개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인구가 특례시 급 이상으로 많아지면 천주교 개성교구가 세워져 교구 내 가톨릭계열의 중고등학교가 개교할 것이다. 이 중 대학 측면으로는 성균관과 성균관대학교를 통합해 성균관대학교 개성캠퍼스가 국자감-성균관을 정식으로 계승했다고 인정받아 설립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균관대 자연캠퍼스가 수원이 아니라 개성에 자연캠퍼스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인교육대학교]]의 전신인 개성사범학교가 개성에 존속해서 개성교육대학교로 이름을 바꿔서 존재했을 것이다. 또한 [[송도학원]]에서 1949년에 송도약학대학을 세우고 당시의 개성시 송도중학교 건물 일부를 빌려 1950년 6월 26일 개학 예정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개성을 수복하면 송도약학대학이 송도대학교로 바뀌어서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평택대학교]], [[수원대학교]], [[용인대학교]]처럼 이 지역 이름을 딴 사립대학교도 설립되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