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간호사 (문단 편집) === 국외 ===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 간호사 출신 중 최대 유명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헌신의 아이콘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행정가로서 활약이 크며, 특히 간호와 보건위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린 위업이 더욱 크다. [[크림 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을 위시한 간호팀이 오기 전에는 42%에 달하던 [[영국군]] 부상병 사망률이 그들의 체계적인 간호 활동과 환경 개선에 의해 2.2%로 줄었다.[* 다만 사망률이 2.2%로 낮아진 것이 과연 나이팅게일의 순수 업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단순 통계학적인 부분의 내용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사망률이 적어진 원인이 없음), 이 통계가 나올 때쯤엔 이미 전쟁의 막바지로 접어드는 시기로 부상자가 적어지는 때였다는 의견과, 전쟁터에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의 간호인력 확충으로 줄어들었다는 의견이 있다.] 이 말인 즉슨, 환자의 치료나 생명 유지에 있어서 적절한 위생 환경 유지와 간호 행위 역시 의사의 진료 행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며, 이후 나이팅게일은 간호학의 발전과 전문적인 간호사 양성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물론 위생 및 감염 방지가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볼 수는 있지만, 간호의 정의는 "모든 개인, 가정,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건강의 회복, 질병예방, 건강유지와 증진에 필요한 지식, 기력, 의지와 자원을 갖추도록 직접 도와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영역에 있어서 위생 및 감염 관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일종의 간호업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간호는 사명이어야 한다며 간호 면허 등 간호의 직업화를 반대했다는 점은 평가가 갈린다. 나이팅게일이 간호가 직업이 아니어도 괜찮았던 이유는 집이 잘 살았기 때문. * [[마거릿 생어]] * [[하야시바라 메구미]] - 간호학교와 성우양성소를 동시에 다녔으며, 정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 졸업 후 1년간 개인병원에서 근무하였으며, [[성우]] 수입으로 생활이 가능해지자 그만두었다. * [[마리안네 슈퇴거]]·마가렛 피사렉 - [[오스트리아]] 출신, 그리스도 왕 시녀회[* [[가톨릭]] [[재속회]]. 집을 떠나 [[수도원]]에서 공동생활하는 [[수도자]]들의 모임([[수도회]])은 아니고, 세상에 살면서 수도자처럼 살아가는 모임이다.]에 소속된 간호사이다. 20대의 젊은 두 여성은 1962년 및 1966년부터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일에 평생을 헌신하였다. 소록도 할매로 불리던 그들은 2005년, 건강 문제로 더이상 봉사 활동을 하기 어렵게 되자 작별의 편지 한 통을 남긴 채 홀연히 소록도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 [[서서평]] - 본명은 엘리자베스 셰핑(Elisabeth Johanna Shepping). [[독일계 미국인]] 간호사로 1912년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로 파송되어 전남 광주에서 평생 독신으로 한국인처럼 살며 의료와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34년 향년 54세로 사망했다. 광주 시민들이 광주 최초의 시민사회장을 치룰 정도로 존경받았다. * [[메리 시콜]] * --[[지닌 존스]]-- - 이쪽은 60명의 어린 생명을 약물로 죽인 [[연쇄살인범]]이다. 비슷한 사례로 [[요코하마 병원 링거 살인 사건|쿠보키 아유미]]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