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세리크 (문단 편집) === 지중해에서의 전쟁 === 461년, 가이세리크는 서로마 황제 [[마요리아누스]]가 북아프리카 탈환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러나 가이세리크는 사전에 배신자들의 획책을 이용할 수 있었고 함대를 파견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카르타고 노바에 정박해있던 서로마의 함대에 선제공격을 가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서로마가 꼬박 3년 동안 공을 들여 모아두었던 전함들은 모조리 불타버렸다. 468년, [[서로마]]의 황제 [[안테미우스]]와 [[동로마]]의 황제 [[레오 1세(황제)|레오 1세]]는 연합군을 결성하여 반달 왕국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하였다. [[프로코피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서로마와 동로마가 동원한 연합군은 대략 10만 명에 달했고, 함선의 수도 1000척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이 수치를 그대로 믿지 않으며 대체로 5만 가량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보더라도 연합군의 규모가 매우 거대했음은 분명해보인다.] 연합군은 세 갈래로 갈라져 반달 왕국의 수도 카르타고를 전방위에서 압박해왔다. 서로마의 장군 마르켈리누스가 거느린 해군은 사르데냐 섬을 점령하였고, 동로마의 장군 헤라클리우스가 거느린 육군은 카르타고의 남동쪽을 공격해왔다. 그리고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바실리스쿠스]]는 직접 주력부대를 실은 대규모 함대를 거느리고 카르타고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가이세리크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그는 카르타고 인근에 정박해있던 바실리스쿠스에게 거짓으로 항복을 청하며 5일의 시간을 요구했다. 승리를 목전에 두었다고 착각한 바실리스쿠스는 이에 속아 넘어가 가이세리크에게 시간을 주는 실수를 저질렀고, 가이세리크는 그 동안에 함대를 재정비한 후에 본 곶에 정박해있던 연합함대를 기습하고는 화공을 퍼부어 1000척이 넘는 적선을 궤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본 곶 해전]]) 이로써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서로마와 동로마의 연합군은 패퇴하고 말았다. 이 참혹한 대패의 여파로 연합군 사령관 바실리스쿠스는 동로마 황제의 진노를 피해 달아나야 했으며, 서로마 황제 안테미우스는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키메르]] 장군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결국 동로마 황제 [[레오 1세(황제)|레오 1세]]는 가이세리크와 강화협상을 맺어야 했고, 가이세리크는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의 해안지역을 확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