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u-4 (문단 편집) === 역설계와 기체 개발 === 그러나 승무원이 아닌 [[B-29]]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원래부터 소련은 B-29를 [[무기대여법|렌드리스]]로 공급해 달라고 미국에게 여러번 사정했지만, 미국은 전략무기를 지원했다가 큰코다칠까봐 이를 거절하였다. 일단 공동의 적인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면, 그 다음은 [[냉전|미국과 소련이 서로 대립각을 세울 것]]이라는 사실쯤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미국도 당연히 이 전략 폭격기의 원조만큼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최신예 전략폭격기가 실전에서 [[일본 제국|일본]]을 [[일본 본토 공습|불바다로]] [[도쿄 대공습|만드는]] 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했으므로, 소련 입장에서 이 기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 이러한 와중에 소련은 자국에 불시착한 B-29의 실물을 '''합법적으로'''[*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소련은 1945년 8월까지는 [[태평양 전쟁]]에서 중립국이었기에 불시착한 [[B-29]]를 자국에 억류하는 것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확보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상황이면 누구라도 이 최신 전략 폭격기를 어떻게든 '확보', 즉 [[리버스 엔지니어링|'''복제''']]하려 드는 것이 정상이다. 당연히 [[이오시프 스탈린|강철의 대원수 동지]]라고 예외는 아니었고, 대원수께서는 [[투폴레프]] [[설계국]]에 [[공밀레|기술자들을 갈아넣어]] 2년 안에 이를 복제하도록 지시했다. 소련은 B-29 불시착기 여러 대를 입수했기 때문에 복제할 원본 자체는 그럭저럭 충분했다. 그러나 소련의 기초기술, 특히 [[재료공학]], [[금속공학]] 기술이 전반적으로 미국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기존의 소련 항공기보다 훨씬 복잡했던 B-29의 설계에 기술자들은 골머리를 썩혔고 특히 엔진의 복제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B-29]] 문서에도 나오듯이 이 엔진은 출력이 2200마력에 달하는 괴물이다. 게다가 과열 문제에 취약해서 당시 미국의 기술력으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그 미군조차도 75시간마다 엔진을 떼어내 [[오버홀]]하는 극단적인 [[쇼미더머니]]로 해결해 버렸을 정도.] 결국에는 B-29를 복제한 Tu-4를 개발해내는데 성공했으며 엔진 출력이 B-29보다 좀 더 향상되어[* 각 엔진마다 200마력 정도 향상되었다.] 원판보다 폭장량과 항속거리, 작전고도 등이 살짝 늘어났다. 이 복제 작업의 성공에는 2가지 의의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소련이 미국 물건에 뒤지지 않는 전략폭격기를 확보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잃었던 대형 폭격기 설계 기술을 다시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Pe-8]] 같은 중폭격기를 제작하기는 했었지만, [[독소전쟁]]이 벌어지면서 관련 기술자나 자료들이 전부 증발하는 바람에 명맥이 끊긴 상황이었다. 예를 들자면, [[Pe-2]]와 [[Yer-2]], [[TB-7]]의 개발에 앞장선 인물이자 여압장치를 만들 줄 알았고, 열악한 기술수준에도 불구하고 소련 항공기 개발자들 중에서 가장 고성능의 중고고도 기종을 잘 만들던 인물 중 하나이던 페틀랴코프가 전쟁으로 인해 개발자고 뭐고 싸그리 전쟁터 혹은 굴라그로 끌려가자 소련 정부한테 따지려고 자신이 만든 [[Pe-2]]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한 것이 있다.] 이는 이후 소련의 폭격기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표적으로 후술할 [[Tu-16]]과 [[Tu-95]] 등이 큰 영향을 받았다. 이 때 B-29를 복제하며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1970년대까지 활약했던 [[Tu-16]]과 지금까지 활동하는 걸작 폭격기 [[Tu-95]]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니까 Tu-16과 Tu-95는 B-29의 딸이나 다름없다. [[Tu-16]]은 중국에서 [[H-6]]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복제했고, H-6은 아직까지 현역으로 있으니 아직까지도 B-29의 직계 자손들은 미국-러시아-중국에서 현역으로 남아있는 셈. 소련에서는 Tu-4를 1960년대 중반까지 사용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J-1_(Tupolev_Tu-4).jpg|width=100%]] 중국에서 개발한 [[조기경보기]] 버전 [[파일:attachment/chineseawacs.jpg]] 1960년대에 이것을 또 중국이 수입하여 [[중인전쟁]]에서 폭격기, 조기경보기, 수송기로 잘 써먹었으며, 이러한 제공력 차이가 승패를 가른 주요 원인중 하나로 뽑힐 만큼 효과가 좋았다고 한다. 중-소 국경분쟁 후 중국측도 소련의 대공군력을 상대하기 위해서 고성능의 조기경보기를 제작하려고 해서 Tu-4에 레이더돔을 올린 KJ-1을 시험적으로 제작하지만, 당시 중국의 기술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성능이 안나왔고, 결국 중국은 2000년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조기경보기를 보유하게 된다. 1950년대의 미국의 악몽 중 하나는 Tu-4가 미군기로 위장하고 [[캐나다]]를 통해 미국 본토에 들어와 서부 지역을 폭격하거나, '''급유까지 받아서 동부를 공격하는''' 자살공격[* 공격을 감행한 폭격기는 항속거리 문제나 요격을 위해 이륙한 미 공군 요격기 때문에 절대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테니 그야말로 편도 자살 테러. 게다가 이는 군수품 생산에 필수적인 공장들이 디트로이트 등 동부 해안 지역에 꽤 많기에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그냥 [[항공 폭탄]]을 탑재하고 있다면 1~2대가 날아와도 별 피해가 없겠으나 '''[[핵무기|핵폭탄]]을 탑재하고 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파생형으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엔진에 조종석을 하나 설치하고 이중 반전 터보프롭 엔진으로 바꾼 [[https://images.app.goo.gl/XtkdNkmzz3KsXkCE7|Tu-4LL]]이 있었는데, 이것은 프로토타입 함재 공격기였던 Tu-91의 개발에 썼던 플랫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