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5년 (문단 편집) == 정치/외교 ==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없었던 '''한일 정상회담'''이 3년만에 열렸다. 이로서 이명박 정부의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독도 방문]]과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천황 사과 요구|사과 요구]]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가 온화해졌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할 뜻이 없다고 고수하였으나 11월 위안부 문제 합의를 위해 한일정상회담이 열렸으며, 동시에 한중일 3국 정상회담도 성사되었다. 내치에서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청년 지원 정책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노동개혁 어젠다가 청년담론을 두고 치열하게 경합한 시기였다. 2009년에 먼저 사망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6년만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건강악화로 사망하였으며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된 [[국가장]]이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다. 김영삼 - 김대중 양자구도의 양김시대가 김영삼의 사망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1992년 [[14대 대선]]의 3대 주자([[김영삼]], [[김대중]], [[정주영]])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 3김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종필은 <중앙일보>에 회고록을 연재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