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3년 (문단 편집) === [[한총련]] 출범, 90년대 학생운동의 등장 === 1987년부터 5년간 학생운동을 선도하던 전대협의 후신으로 1993년 4월 25일에 전북 전주에서 한총련 출범을 알렸다. 이후 5월 28일, 고려대 안암캠에서 전국 187개 대학생 6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기 한총련 출범식을 열어 한총련은 첫 걸음을 내딛었다. 초대 의장으로 김재용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앉힌 한총련은 이날 출범선언문에서 “외세와 독재에 맞선 전대협의 투쟁 정신을 계승해 자주․민주․통일을 향한 백만학도의 조직으로 역사와 민족 앞에 출범을 선포한다”고 밝히고 “한총련은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로 학원의 자주화 및 조국과 민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총련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출범 때부터 남북학생 전화통화 회담을 계기로 공안당국의 수사대상이 됐고, 6월 12일 '조국의 평화실현과 자매결연을 위한 예비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연세대 도서관에서 판문점으로 향하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해 일부 학생들은 연신내 등지에서 과격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기 불광동에 있었던 학생시위를 진압하러 간 김춘도 순경이 학생 시위대에게 몽둥이 등을 맞아 순직하면서 한총련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시선은 이때부터 적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