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리프 빌리에 드 릴라당 (문서 편집) Philippe Villiers de L'Isle-Adam (1464 ~ 1534) [[구호기사단]]의 44대 기사단장이자 [[몰타 기사단]]의 초대 단장. 아이슬 아담이라고도 불린다. 기사단장에 취임하기 위해 [[마르세유]]에서 로드스 섬으로 출발하였지만, 니스 앞바다에서 배 1척이 불타거나 기함인 [[성모 마리아]] 호가 번개에 맞아 9명이 죽는 사고를 당했다. 또한 폭풍으로 배가 파손되어 [[시라쿠사]]로 향했다가 [[투르크족]] [[해적]]인 쿠르트울루가 해역을 휘젓고 다니자 밤에 항구를 빠져나와 고생을 하면서 로도스 섬에 도착하여 1521년에 기사단장에 취임하였다. 1521년 9월 10일에 [[오스만 제국]]의 술탄인 [[쉴레이만 1세]]가 협박 편지를 보내자 오스만에 대한 대비를 하였으며, 1522년 4월에는 밀을 수확하거나 도시 외곽의 차폐물을 제거하여 불을 놓으면서 항구 어귀에 쇠사슬을 설치했다. 6월 10일에 쉴레이만 1세의 협박 편지를 다시 받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하였으며, 6월 16일에 오스만 군대가 진군하기 시작하여 7월 28일에 로도스 섬이 공격받자 오스만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오스만 군을 상대로 싸우면서 지연 작전을 하기 위해 2주간 협상을 시도했지만, 12월 20일에 항복하면서 로도스 섬을 떠나 [[지중해]]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여 [[유럽]]의 군주들을 찾아가 "성전을 계속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마련해달라"는 청원을 하였으며, 그 와중에 [[헨리 8세]]에게 지원을 받아 대포를 제공받았지만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1530년에 [[카를 5세]]에게 바르바리 해안가에 있는 트리폴리의 요새를 방어해주면서 1년마다 [[모든성인대축일]]에 매 1마리를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몰타 섬, 고초 섬, 코미노 섬을 제공받았다. [[분류:구호기사단장]][[분류:1464년 출생]][[분류:1534년 사망]][[분류:우아즈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