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찰예비대(일본) (문서 편집) [include(틀:역대 일본의 군사조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1st_Regiment_of_NPR.jpg]] [[파일:1669637167369.webp]] 일본 경찰예비대의 기 [목차] == 개요 == 警察予備隊(けいさつよびたい), National Police Reserve.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일본군]]은 해체되었고, 해체 및 해외 [[국민]] 및 병력의 귀국 등 기타 행정 업무를 처리할 [[일본 육군]]의 제1복원성, [[일본 해군]]의 제2복원성만 남겼다. 그러나 [[1947년]]부터 [[미국]]은 방침을 바꿔 일본에 군사조직을 재편성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주일미군]]이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일본]]에 치안 공백이 생기자 [[더글러스 맥아더]]는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에게 치안을 담당할 부대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였고 [[1950년]] [[7월 26일]]에 경찰예비대가 생겼다. 이들은 초기에는 [[경찰]] 업무를 보조하는 [[부대]]였으나 점차 군사업무도 맡게 되고 [[1952년]]에 [[보안대(일본)|보안대]]로 개편되고 [[1954년]]에 [[육상자위대]]가 된다. 그리고 경찰예비대가 창설되었을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군대]]를 재건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입소 후 "난 [[일본 경찰|경찰]]이 되려고 왔는데, 이건 그냥 [[군대]]잖아?"라며 퇴소해버리기도 했다. [[일본사회당(1945년)|일본사회당]] 위원장이 [[최고재판소]]에 경찰예비대 [[위헌]]에 대한 소송 건을 제출하기도 했으나 무산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6px-National_Police_Reserve_Regional_units_%281951%29.svg.png|width=500]] 제1관구대는 [[간토|관동 지방]], 제2관구대는 [[홋카이도]]와 [[혼슈]] 동북부 일부, 제3관구대는 혼슈 서부와 [[시코쿠]], 제4관구대는 혼슈 일부와 [[규슈]], [[오키나와]] 등을 담당했으며 이런 분할은 [[육상자위대]]의 [[방면대]]로 이어진다. 상당히 [[조직]]이 급결성됐기 때문에 75,000명이 두 달만에 [[입대]]했다. 초기 인원은 일본 육해군 [[장교]] 출신은 들어오지 못 하게 했고 [[사관생도]]까지만 허용했기 때문에 [[일본 경찰]]에서 파입된 인원들이 간부를 구성했다. 일단은 [[간부]] 임용하기가 여의치 않아서 [[주일미군|미군]] [[고문관]]이 훈련과 지휘를 맡고 입대자들은 전원 2등경사 [[신분]]으로 훈련을 받았다. 간부 자원은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라고 적힌 [[완장]]을 차고 다른 [[훈련병]]들과 [[교육]]을 받다가 에타지마에 위치한 [[일본해군병학교]] 시설에 가서 간부 교육을 따로 받았다. 경찰예비대의 [[성격]]이 군으로 탈바꿈하자 군 업무에 익숙지 않은 간부 자원들은 대삽질을 반복했고 [[한국전쟁]]에서 [[군경력자]] 출신 [[지휘관]]들이 잘 싸우자 [[미국]]은 [[생각]]을 바꿔 [[좌관급 장교]]까지 경찰예비대에 [[입대]]를 허용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Military_exercise_of_NPR1.jpg]] 훈련받는 경비대원들. 그리고 [[토요타]]의 [[베스트셀러]]중 하나인 [[토요타 랜드 크루저]]의 탄생에도 간접적인 역할을 했는데, 토요타가 [[6.25 전쟁]]을 대비해서 만들었다가 입찰에 실패한 4륜구동 BJ지프의 입찰을 경찰예비대가 제안하면서 일본 [[SUV]] 탄생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 계급 == [[파일:external/www.asaho.com/17.jpg]] * 경찰감(警察監) - [[중장]] * 경찰감보(警察監補) - [[소장(계급)|소장]] * 1등경찰정(1等警察正) - [[대령]] * 2등경찰정(2等警察正) - [[중령]] * 3등경찰정(3等警察正) - [[소령]] * 1등경찰사(1等警察士) - [[대위]] * 2등경찰사(2等警察士) - [[중위]] * 3등경찰사(3等警察士) - [[소위]] * 1등경찰사보(1等警察士補) - [[상사(계급)|상사]] * 2등경찰사보(2等警察士補) - [[중사]] * 3등경찰사보(3等警察士補) - [[하사]] * 경사장(警査長)陸士長 - [[상등병|상병]] * 1등경사(1等警査) - [[일등병|일병]] * 2등경사(2等警査) - [[이등병|이병]] == 여담 == 경찰예비대는 초기에는 [[일본군]] 장교 출신을 배제하고 [[관료]]들을 끌어들여 지휘부를 만들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주일미군]]이 빠져서 그 공백을 메우려, 워낙 급하게 만들다 보니 지휘부를 구성할 인원이 부족해서 훈련 받던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서 일단 자리에 임명해두고 인원을 보충할 때마다 다시 조정하는 식으로 했다. 당시 입대했던 사카모토 료쿠(坂本力)[* [[1970년대]]에 제7사단장과 제9사단장을 지냈다.]라는 인물에 따르면 이랬다. 사카모토는 [[NHK]]에서 [[기자]]로 근무하다 경찰예비대에 입대했는데, [[2차 세계 대전]] 때 견습사관을 지낸 적이 있단 이유로 1등경찰사([[대위]]에 해당)로 [[계급]]을 받았고, 임의로 편성한 중간사령부A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는 현재의 [[북부방면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장급 직위이다. 대위 계급이 중장급에 임명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조직이 기틀을 잡아가면서 매달 직위가 강등되어서 자기 계급에 맞는 직위를 찾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1개월 정도 되니 정식 [[사령관]]이 임명되어 오고 나는 [[사단장]]이 되었다. 4 일 정도 뒤에 또한 공식적인 사단장이 와서 [[연대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부대 전속을 [[명령]] 받아서, [[12월]][* [[1950년]]을 말한다.] 초에 약 1000명으로 구성된 [[연대]]를 데리고 [[우츠노미야]]에 갔다. 거기에 진짜 연대장이 부임해오고, 나는 연대 [[정보참모]]가 되었다. 연대장과 만났는데 [[센다이]]에서 나를 사단장에서 쫓아낸 그 사단장이었다. > >어쨌든 순식간에 중장에서 대위까지 3개월만에 내려갔다. 다시 [[중장]]으로 [[진급]]하는 데 25년 걸렸다. 출처 - [[https://gendai.ismedia.jp/articles/-/74520?imp=0|당시를 다룬 기사]]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경찰예비대,version=51)] [[분류:준군사조직]][[분류:자위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